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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로우]취중진담

bb1yak 2017. 4. 8. 22:56



“뭐야, 캡틴 또 술 마셨어요?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그래, 특히 그 얼굴 말이에요. 안 그래도 성질 더러워 보이는데. 술까지 마시면 더 화난 듯 보여서. 붉게 오른 빛이 어지럽게 낯의 위를 떠돌았다. 걸러지지 않은 숨이 허공을 맴돌 때마다 진한 알코올의 향이 번져.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어 술로 입술을 축였나.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은 한없이 위태롭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도 기어이 향하고자 하는 곳을 향했다. 어깨에 얹히는 손길이 퍽 우악스럽기도 하지. 하, 가벼운 조소가 입가를 빙글, 맴돌았다. 그리고 네가 보지 못할 그 때에 한껏 구겨낼 터였다. 일그러진 시선이 너를 향했다, 반쯤 풀어진 동공이 다시 위를 향할 때 즈음에는 다시금 예의 고운 호선을 그려내었다. 닿는 입술은 꽤나 뜨겁다. 기도를 막는 아릿한 숨에 덩달아 취하기라도 하면 얼마나 좋아. 네 머릿속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몰라도, 제 정신도 아닌 채로 매번 날 안으러 오지 말란 말이야. 씨발.

 

“캡틴, 캡틴…. 흐, 천천히…. 읏, 아파요, 아!”

 

그래, 그 시선 말이에요. 언제나 그랬단 것처럼 나를 담고 있는 그 눈동자가 나를 찔러. 나는 이렇게 아픈데, 너는 아무것도 알아주지 않잖아. 금빛의 동공에 비친 형상이 꼭 내가 아닌 것만 같아서, 몸을 훑어 내리는 손길이 녹아내릴 듯 농밀해서, 혹은 맞춰오는 입술마다 애가 닳아서. 분을 이기지 못했다는 양 흘리는 눈물은 언제나 쓰라렸다. 꼭 맞물린 접합부가 붉게 익은 채로 아려오는 것과는 별개로, 나를 안는 네가 너무나도 아파서 그랬나. 나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애타게 너를 부르는데. 다 갈라진 목소리로도 너를 찾는데. 끊기는 호흡으로도 너를 놓지 못하는데. 목소리를 잊은 것인지, 잊은 척 하는 것인지. 너는 언제나 말이 없었지. …지금 또한 그렇고. 술에 잔뜩 절어서는, 나를 안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긴 한 걸까. 네 머릿속엔 다른 사람이 들어차 있진 않을까. 나는 이따금 그게 너무나도 무서워져서. 있지, 네 시선이 향한 게 내가 맞아? 그거 욕구를 푸는 것밖에는 되지 못한다 해도 말이야, 네가 찾아오는 게 내가 맞아? 혹여라도 그게 맞다면, 한 번만 불러주면 안 될까. 나를.

 

“…하, 안에 하지 말라니까.”

 

실핏줄이 터졌나. 홧홧하게 번진 눈가를 부비며 턱 끝까지 차올랐던 숨을 가쁘게 뱉었다. 네 허리에 둘렀던 다리를 풀어내고, 차마 너를 마주하지 못해 시선은 옆을 향한 채로 중얼거리는 말이지. 네가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괜히. …괜히.

 

“이제 그만 저리 가 봐요, 씻어야 하니까.”

 

비킬 생각도 않는 네 어깨를 약하게 밀어내어 보였다. 이 인간이 왜 이래. 그렇게 취하고서도 아직 힘이 남아도는 건가. 시선은 여즉 너를 향하지 못한다. 꼭 죄라도 진 사람처럼. 네 앞에서 나는 항상 죄인이 된다. 느끼지 못했던 죄악의 무게에 짓눌려 나는 매일을 죽어가. 온통 검게 썩어 들어가는 심장은 죄악의 대가이려나. 옅은 한숨을 뱉곤 상체를 일으켰다. 너는 미동조차 없으니 화한 숨결이 조금 더 가까워 질 뿐이고. 결국 닿지 못할 걸 알아. 이젠 미련조차 남지 않았다. 참, 내가 어쩌다. 우스워라.

 

“캡틴, 나 씻어야-.”

 

아, 이런. 네 입술이 닿았다. 그만. 그만 좀 해. 악을 쓰며 너를 밀어내고 싶었다. 어쩜, 그런 바람마저도 거짓일까. 달디 단 입술을 열어 너를 받아들이고, 환희를 내지르는 호흡을 온통 네게로 쏟아내고 싶었다. 열락에 찬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또다시 저 나락으로 떨어져 내릴 게 분명했지만. 위로, 더 위로 둥실 떠오를수록 이후의 추락이 으스러질 듯 아플 것이 분명했다만. 못 이기는 척 입술을 열고, 가만히 너를 기다리는데, 네가 멈추어 있는 연유를 알지 못했을 뿐이다.

 

“…….”

 

어라. 비가 오나. 아니, 여기에 비가 내릴 리가 없는데.

 

“…캡틴.”

 

비가 오는 게 맞나 보다. 내 세상이 온통 젖어 비를 뿌리고 있으니. 타오르던 석양과도 같던 눈동자가 흠뻑 젖었다. 비를 담았다. 스며든 빗물로 인해 맞닿은 입술이 썼다. 네 눈물이 스민 혀끝이 너무나도 아려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뺐다. 눈물이 진다. 흩어지는 방울마다 세상이 함께 무너져 내렸다. 맙소사. 어떻게 해야 해. 너는 왜. …아, 정말. 이 와중에도 네가 나를 위해 울어주기를 바란다는 게, 나는 정말 저 나락까지 떨어져 내렸구나. 네게 남은 것은 온통 죄악뿐이야. 로우.

 

“로우.”

 

가만. 내 목소리가 아니다.

 

“…로우.”

 

온통 젖은 목소리가 나를 향한다. 환청인가 하였더니, 온통 메마른 입술이 달싹이며 꽉 잠긴 목소리를 뱉는다. 꼭 너와도 같았다. 울지 말아줘. 네 눈물을 멎게 하기 위해서라면, 내 무엇이든 다 줄 테니, 제발. 속을 태우는 절박은 입 밖으로 내어지지도 못한 채이다. 네가 내 목소리를 앗아가기라도 했나. 이제는 내가 목이 메여 입술만 겨우 벙긋거렸다. 자책이 더해질 새도 없이 네가 길고 긴 숨을 내쉬었다. 네 호흡이 얼굴 위로 흩뿌려지자, 화한 알코올의 향이 다시금 무뎌졌다 싶었던 코끝을 찔렀다. 네 속눈썹의 끝에 맺혔다, 추락한 물기가 내 뺨을 타고 흘렀다. 채 마르지 못한 눈물 자욱이 또다시 쓰렸다.

 

“-.”

 

좋, 아, 해. 네 입술이 그리 말하고 있었는데, 제 귀는 아무런 소리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을 되뇌어야만 하는 것이 찢어질 듯 아파 또다시 눈물이 차오르려 할 즈음에.

 

“좋아해, 로우.”

 

평생의 시간을 멎게 한 단미가 귓전에 내려앉았다. 석양인 줄로만 알았던 금빛의 눈은 달이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달이다. 타오르는 달빛은 여전히 비를 머금었는데, 입가로는 한 줄기 볕이 내린다. 명백한 모순임에도 차마 깨닫지 못했다. 조금은 어색한 호선이 네 입가를 메웠다. 숨조차 잊고 모든 시간에 멈춰 버린 나를 일깨우는 손길은 여전히 우악스럽기 그지없었다. 투박하고, 다정이라곤 조금도 섞여있지 않고, 서툴기 짝이 없는.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못 말할 것 같아서. 그런데 다 깨버린 것도 같고.”

“…….”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그래, 다 술주정 같겠지만….”

 

멈췄던 시간이 흘렀다. 그래,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그 먼 시간을 돌아 네게 닿았나 싶었다. 너를 내 시간 선에 비유하자면, 떨어지는 나뭇잎만도 못한 존재일 텐데. 나는 어쩌다 그 평생을 다 바쳐도 모자랄 만큼의 마음을 너에게로 향했나. 다만 그 시간 동안 이 순간만큼은 감히 그려내질 못해서 말이야. 나는 모든 언어를 잃고, 맙소사, 휘어진 눈매로 쏟아진 애상이란.

 

“캡틴.”

 

참 다행이에요, 내 검은 속에서 다 썩어지기 전에 전할 수 있어서.

 

달이 참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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